승봉도
승봉도에는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 했던 것으로 보이며 주로 어로활동 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으나 고구려 ,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데 따라 소속이 비뀌었다 . 삼국시대 백제에 속하였고 고려 현종 9 년 (1018 년 ) 수주 ( 수원 ) 에 속군되었으며 뒤에 인주 ( 인천 ) 에 속하였다 .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1895 년 인천부 덕적면에 편입되었다 .1914 년 경기도 부천군 덕적면면에 소속되었다가 1914 년 부천군 덕적면에 편입되었으며 1966 년 영흥면 자월출장소에 속하였다 . 1973 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83 년 자월출장소와 합하여 자월면으로 승격되었다 . 370 여년전 신씨와 황씨가 함께 고기를 잡던 중 풍랑을 만나 대피한 곳이 승봉도이다 . 굶주린 시장기를 면하기 위하여 섬 이곳 저곳을 둘러보니 경관도 좋고 산세도 괜찮아 사람이 살수 있는 곳이라 판단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는데 신씨와 황씨가 두 사람의 성을 따서 신황도라 불리우다 이 곳 지형이 마치 봉황새의 머리모양 같다하여 다시 승봉도라 하였다 .
사승봉도
승봉도에서는 사도라고 부르는 오염되지 않은 환상적인 섬, "사승봉도"는 개인 소유의 섬으로 사람이 살지 않아 한적함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하얗게 펼쳐진 백사장과 깨끗하고 울창한 소나무를 품고 있는 사승봉도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백사장에서 캠핑도
가능하고,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성수기에는 종선을 운항하지만비수기 때는 배를 빌려서 가야 한다. "사승봉도"에 일단 들어서면
그야말고 비경이 펼쳐진다. 길이 4km, 폭 2km의 광활한 백사장은 남태평양의 눈부신 백사장을 연상시킨다. 뒷산은 해송, 참나무,
오리나무, 칡덩굴 등이 울창한 정글을 만들어 놓았다.저녁 무렵, 붉은 색 꼬리를 바다 위에 길게 끌며 멀리 덕적도 뒤쪽으로 빨려들
듯이 떨어지는 낙조가 또한 장관이다. 물맛이 아주 좋고 갯바위 낚시터도 있다. 흠이라면 물이 부족해 샤워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이작도
고구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데 따라 소속이 비뀌었다. 삼국시대 백제에 속하였고 고려 현종 9년(1018년) 수주(수원)에 속군되었으며 뒤에 인주(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1914년 3월 1일 경기도 부천군 영흥면에 소속되었다가 1983년 옹진군 자월면으로 승격되면서 1개의 법정리로 정해져 오늘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피난 온 난민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 섬은 옛날에 해적들이 은거하여 이적도라 불렀으며 이적이 이작으로 변해 이작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중 큰 섬을 대이작도, 작은 섬을 소이작도라 부른다. 해변주위에 갯바위 낚시터가 산재하고 있고 자연산 굴이 많이 나며 흑염소가 방목되고 있다.
소이작도
고구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데 따라 소속이 비뀌었다. 삼국시대 백제에 속하였고 고려 현종 9년(1018년) 수주(수원)에
속군되었으며 뒤에 인주(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1914년 3월 1일 경기도 부천군 영흥면에 소속되었다가
1983년 옹진군 자월면으로 승격되면서 1개의 법정리로 정해져 오늘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피난 온 난민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 섬은 옛날에 해적들이 은거하여 이적도라 불렀으며 이적이 이작으로 변해 이작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중 큰 섬을 대이작도, 작은 섬을 소이작도라 부른다. 해변주위에 갯바위 낚시터가 산재하고 있고 자연산 굴이 많이 나며 흑염소가
방목되고 있다.